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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GUCCI)의 역사 : GUCCI Time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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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계에서 가장 핫한 브랜드로 손꼽히는 구찌는 승마 용품과 가죽 브랜드로 시작되었습니다. 구찌는 어떻게 성장하였는지, 구찌 브랜드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GUCCI
구찌의 탄생 (1921년)
구찌오는 런던의 호텔에서 일하던 중 호텔에 오는 상류층 손님들의 고급 가방을 보며 영감을 얻어 고향 피렌체로 돌아와 가죽공방 기술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그후 이탈리아의 헤리티지 러기지 브랜드에서 경력을 쌓은 그는 1921년, 가죽 용품과 작은 가방을 취급하는 자신의 이름을 딴 구찌 매장을 피렌체에 오픈하는데 이것이 구찌의 시작입니다.
구찌의 피렌체 아뜰리에
상품라인과 매장의 확장 (1930년대)
초반에는 승마용품을 구입하는 귀족들이 주요 고객이었는데 이때 오늘날까지도 구찌의 아이콘인 홀스빗 아이콘이 개발됩니다. 이후 상품라인을 더욱 다양화 시켰고 1938년에는 구찌오의 세 아들인 알도(Aldo)와 바스코(Vasco), 로돌포(Rodolfo)가 브랜드에 합류하였고 이탈리아 쇼핑의 중심지인 로마 콘도티 거리에 매장을 열게 됩니다.
구찌 홀스빗
뱀부백의 탄생 (1947)
제 2 차 세계 대전 이후 가죽 재료의 부족 현상으로 많은 가죽 업체들이 문을 닫게 됩니다. 이때 구찌오의 첫째 아들의 알도는 일본에서 수입이 가능한 대나무로 제품을 만드는 아이디어를 내놓는데 이것이 오늘날까지도 구찌를 상징하는 제품 중 하나인 뱀부백입니다. 말 안장의 곡선에서 영감을 받은 이 뱀부백은 귀족들과 유명인사들의 애장품이 되었고 가방뿐만 아니라 벨트, 시계등 여러 곳에 활용되었습니다. 현재까지도 뱀부백은 구찌의 스테디셀러이 뱀부 라인은 구찌에서 가장 고가라인입니다.
2022년 새롭게 런칭한 구찌 뱀부 1947
구찌 웹라인의 등장 (1951)
몬테나폴레오네 거리(Via Montenapoleone)에 구찌의 첫 번째 밀라노 매장이 문을 엽니다. 이때 말 안장에서 영감을 얻은 그린-레드-그린으로 이루어진 웹라인이 소개됩니다. 웹라인은 오늘날까지도 구찌의 트레이트 마크로 활용되고 있으며 구찌의 삼선이라고 불리며 구찌의 여러 제품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다양한 제품에 활용되는 구찌 웹라인
구찌오 구찌의 사망 (1953)
창업주인 구찌오 구찌(Guccio Gucci)가 첫번째 뉴욕 매장을 오픈(1952년)한 다음 해 72세의 나이로 사망하고 알도 구찌와 로돌프 구찌가 경영권을 나눠 가지게 됩니다. 뛰어난 감각을 가지고 있던 알도 구찌는 구찌의 미국 진출을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엘리자베스 테일러(Elizabeth Taylor),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 재키 케네디(Jackie Kennedy) 등의 수많은 유명팬들을 확보하며 세계적으로 번창합니다. 같은 해인 1953년, 아이코닉한 구찌 홀스빗 로퍼가 출시되었습니다. 구찌 홀스빗 로퍼는 현재까지도 전세계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2023년에는 출시 70주년을 기념하여 구찌 홀스빗 1953이 출시되기도 하였습니다.
구찌 홀스빗 1953
GG로고의 탄생 (1955년)
GG로고가 탄생하여 현재까지도 구찌의 로고로 사용되고 있으며 GG로고는 세계적 기업으로 이름을 알리는데 큰 기여를 합니다.
재키백 (1961년)
재키 케네디(Jackie Kennedy)가 구찌 핸드백을 들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재키(Jackie)'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현재까지도 구찌의 재키백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가방 중 하나입니다.
구찌백을 든 재키 케네디
플로라 패턴 (1966년)
모나코 왕비가 된 그레이스 켈리가 밀라노의 구찌 매장을 방문해 가방을 구입하자 로돌프가 선물을 하고 싶다고 말하고 켈리는 스카프를 갖고 싶다고 말합니다. 로돌프는 화가에게 디자인을 요청하고 이때 꽃과 열매, 곤충 들이 어우러진 실크 스카프가 제작되는데 이것이 바로 구찌 플로라 패턴의 시작입니다.
구찌 스카프를 착용한 그레이스 켈리와 구찌의 플로라 패턴
향수 런칭 (1975년)
구찌의 첫 번째 향수인 구찌 넘버 1(Gucci No. 1)이 출시됩니다
첫 번째 패션쇼 (1981년)
피렌체에서 최초로 컬렉션을 선보입니다. 플로라 프린트가 많이 활용되었으며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위기 (1982년)
1982년 로돌포 구찌가 경영권을 갖게 되지만 1년 뒤 로돌포는 사망하고 그의 아들인 마우리치오 구찌가 경영권을 승계받습니다. 그러나 부실한 관리로 인한 재정문제, 탈세 혐의, 가족의 분열 등으로 브랜드는 큰 타격을 받게 되고 재정난이 점점 심각해집니다.
돈 멜로(Dawn Mello) 영입 (1989년)
투자회사인 Investcorp가 구찌의 지분 50%를 인수합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버그도프 굿맨(Bergdorf Goodman)의 지사장이었던 돈 멜로(Dawn Mello)가 영입되어 리처드 램버트슨(Richard Lambertson, 디자인 디렉터)과 닐 바렛(Neil Barrett, 남성 기성복 디자이너)과 함께 구찌를 되살리는 임무를 맡습니다.
톰 포드(Tom Ford) 영입 (1990년)
돈 멜로는 여성 기성복 디자이너로 톰 포드(Tom Ford)를 영입합니다.
가족 경영 종료 (1993년)
마우리치오 구찌(Maurizio Gucci)는 자신의 모든 지분을 인베스트코프(Investcorp)에 매각합니다. 이로써 구찌 가문의 브랜드 참여는 종료됩니다.
톰 포드(Tom Ford)의 CD 임명 (1994년)
돈 멜로(Dawn Mello)가 구찌를 떠나 버그도프 굿맨(Bergdorf Goodman)으로 돌아가고 톰 포드가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된 톰 포드는 구찌의 전통적인 유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큰 성공을 이루었습니다. 또한 변호사 출신의 도메니코 데 솔레(Domenico De Sole)가 구찌 그룹의 CEO로 취임합니다.
PPR과의 전략적 제휴 (1999년)
현재는 Kering으로 이름을 변경한 당시의 PPR(Pinault-Printemps-Redoute)과 전략적 제휴를 맺습니다. 2001년에는 LVMH와의 오랜 싸움에서 승리하여 Pinault Printemps Redoute가 Gucci의 지배 지분을 인수합니다.
수장의 교체 (2004년)
드 솔레와 톰포드가 PPR과의 의견을 좁히지 못하고 결국 구찌를 떠나게 됩니다. 톰 포드의 자리에 알레산드라 파치네티(Alessandra Facchinetti)가 임명되고 유니레버 출신의 로버트 폴레(Robert Polet)가 구찌 그룹의 CEO로,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의 CEO였던 마크 리(Mark Lee)가 구찌 브랜드의 수장이 됩니다.
프리다 지아니니(Frida Giannini) (2005년)
파키네티가 두 시즌을 보낸 후 회사를 떠나고 구찌의 핸드백과 액세서리 디렉터로 일해온 2002년부터 일해오던 프리다 지아니니가 그자리에 임명됩니다. 프리다 지아니니는 4년간 매출 46% 상승을 이루어냅니다.
향수 생산 시작 (2006년)
P&G와 향수 생산 및 유통을 위한 장기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합니다. 2007년에는 구찌 by 구찌(Gucci by Gucci) 향수를 홍보하기 위해 구찌의 첫번째 TV 광고 캠페인이 방영됩니다.현재까지도 구찌의 향수는 매우 인기있는 수많은 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David Lynch가 제작한 Gucci by Gucci 광고 캠페인
새로운 CEO의 취임 (2009년)
마크 리(Mark Lee)의 뒤를 이어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의 파트리치오 디 마르코(Patrizio di Marco).가 구찌의 사장 겸 CEO로 취임합니다.
알렉산드로 미켈레(Alessandro Michele) (2015년)
스텔라 맥카트니와 보테가 베네타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비자리가 CEO로 임명되었고 그는 매출 부진으로 인해 회사를 나간 프리다 지아니니의 자리에 구찌에서 12년간 일해오던 알렉산드로 미켈레를 임명합니다. 당시 무명이었던 미켈레의 승진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구찌의 부진이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미켈레는 올드했던 구찌를 화려하고 젊은 구찌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2015 FW 쇼를 5일 앞두고 프리다 지아니니의 마지막 남성복 컬렉션을 폐기하고 완전히 재디자인하면서 큰 반향을 일으킵니다. 한달 후에는 그의 첫 번째 여성복 컬렉션을 선보입니다. 미켈레의 구찌는 독특하고 미래지향적인 이미지로 구찌의 전환점이 되기에 충분했으며 2015 브리티시 패션 어워드(British Fashion Awards)에서 올해의 국제 디자이너 상을 수상하기도 합니다.
Gucci Men's Fall/Winter 2015-16 Runway Show
구찌의 시대 (2017년)
브랜드에 대한 미켈레의 새로운 방향으로 인해 엄청난 매출 성장을 기록하면서 구찌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한 영광스러운 순간을 맞게 됩니다. 모회사인 케링(Kering)의 매출이 11% 증가하였고 에르메스의 매출을 뛰어넘었습니다. 2018년에는 샤넬의 매출을 뛰어넘어 루이비통에 이어 업계 2위의 명품 브랜드가 되었으며 2020년에는 영국의 '브랜드 파이낸스'에서 선정한 럭셔리 브랜드 순위에서 루이 비통, 샤넬, 에르메스 등을 모두 제치고 패션잡화 브랜드 중에서는 최고 순위인 2위를 기록하였습니다.
2022년 이후~
스트리트 패션의 유행과 함께 큰 매출의 증진을 가져왔던 알렉산드로 미켈레의 디자인은 뉴트로의 테마가 자리잡을 즈음 주목도를 점점 잃게 됩니다. 결국 알렉산드로 미켈레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발표하였으며 2022년 11월 CD직을 떠납니다. 2023년 1월 발렌노의 디렉터였던 사바토 데 사르노(Sabato De Sarno)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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