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린느(CELINE)의 역사 - CELINE Timeline
모던한 미니멀리즘과 세련미의 상징인 셀린느는 오랫동안 여성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 브랜드 중 하나입니다.
셀린느가 본격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은 이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피비 파일로(Phoebe Philo)부터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 이전부터 셀린느는 명품브랜드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었습니다.
셀린느의 시작과 함께 현재까지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피비 파일로의 2010 SS 컬렉션
피비 파일로에 열광하던 수많은 팬들은 에디 슬리먼의 옷을 받아들이지 못하였는데 직장인 여성들을 타깃으로 한 실용적이고 스타일리시하던 옷이 에디 슬리먼의 특징인 깡마른 보헤미안 스타일로 바뀌게 되었는데 여기서 몸매에 구애받지 않고 입을 수 있었던 기존의 셀린느 옷과는 달리 깡마른 모델들만 기용하면서 많은 셀린느 팬들의 비판을 받게 됩니다.
피비 파일로의 셀린느와 에디 슬리먼의 셀린느는 너무 달라 셀린느의 스타일은 올드 셀린느(Céline)와 뉴 셀린느(Celine)로 나눠지게 되었는데 2008년부터 2018년까지 피비 파일로가 있었을 때의 셀린느를 올드 셀린느(old Céline), 에디 슬리먼이 이끄는 2018년부터의 셀린느를 뉴 셀린느(new Celine)라 구분합니다.
에디 슬리먼은 뉴 셀린느의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였고 첫 남성복 라인을 런칭합니다. 이는 여성복만 해오던 명품 브랜드 역사상 처음 있었던 일일 뿐만 아니라 생로랑에서 했던 똑같은 옷을 셀린느의 런웨이에 올리면서 하우스가 먼저인가 브랜드가 먼저인가 하는 논란이 거세게 일기도 했습니다.
많은 기존의 셀린 팬들이 피비 파일로 느낌의 다른 디자이너를 찾아 떠났고 올드 셀린 계정이 생기는 등 올드 셀린에 대한 값어치가 배 이상 상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에디 슬리먼은 이전 브랜드에서 했던 것처럼 로고 E 위의 '를 빼고 글자간의 간격을 좁히는 등 기존 로고를 바꿨고 인스타그램 계정의 사진들을 모두 삭제하면서 새로운 브랜딩을 시작하였습니다.
셀린 남성 라인의 경우 초반에는 좋은 평을 듣지는 못하였으나 이후 점차 주목을 받기 시작하여 남성복 시장에서 셀린느를 각인시키는 데 성공하였고 현재는 MZ세대들 사이에서 매우 핫한 명품 브랜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셀린느가 본격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은 이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피비 파일로(Phoebe Philo)부터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 이전부터 셀린느는 명품브랜드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었습니다.
셀린느의 시작과 함께 현재까지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셀린느(CELINE)
셀린느의 탄생(1945년)
셀린느(Céline)는 남편인 리처드 비피아나(Richard Vipiana)가 파리 말테가 52번지(52 Rue Malte)에 맞춤 제작한 아동용 신발 매장을 오픈합니다. 당시의 로고는 유명한 만화가였던 레이먼드 페이넷(Raymond Peynet)이 디자인한 코끼리였습니다.셀린느의 초기 로고와 당시의 광고
매장 확장(1948년)
고급스럽고 편안한 슈즈를 만들어 선보였던 아동용 슈즈는 가볍고 튼튼했고 아이를 가진 엄마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됩니다. 성공을 거둔 셀린느의 매장은 3개로 확장됩니다.잉카 로퍼(Inca loafer)의 탄생(1959년)
잉카에서 영감을 받은 잉카로퍼를 출시합니다. 잉카로퍼는 가죽소재를 사용하여 제작된 낮은 굽의 여성용 신발로 대중들에게 뜨거운 호응을 얻습니다. 셀린느는 본격적인 사업을 착수하기 위해 이탈리아의 피렌체에 가죽 공장을 마련합니다.여성복 기성복 소개(1960년)
스타일뿐 아니라 기능 역시 중요하게 생각한 스포츠웨어 느낌의 셀린느 첫 여성복을 선보입니다.다양한 제품의 생산 시작(1966년)
가방, 장갑, 벨트를 포함한 다양한 가죽 액세서리 등으로 라인이 확장됩니다. 이 제품들은 모두 피렌체에서 제작됩니다.당시에는 고급스러움과 클래식을 상징하는 고급 스포츠였던 승마에 애정을 가지고 있던 리처드 비피아나에 의해 '아메리칸 설키(American Sulky)' 로고가 탄생합니다.
기성복 컬렉션(1967년)
여성들을 위한 기성복 컬렉션을 선보입니다. 캐주얼한 감성의 편안하고 세련되게 입을 수 있는 셀린느의 옷은 유럽 시장을 비록하여 아시아 시장으로 확장되었고 많은 사랑을 받게 됩니다.1970년대 광고캠페인
로고 변경(1973년)
개선문에서 영감을 받은 C가 포함된 로고로 변경됩니다. 다른 로고로 변경된 현재까지도 이 C모양은 셀린느의 시그니처로 캔버스 등의 로고로 자주 사용되고 있습니다.LVMH의 회장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의 주식 매입(1987년)
셀린느 비피아나는 은퇴를 생각하였고 자신의 아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고 싶어 했지만 아들은 전혀 경영에 관심이 없었고, 이때 LVMH회장 베르나르 아르노가 셀린느의 디자인과 회사의 경영권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셀린느의 주식의 70%가량을 매입합니다.LVMH (1996년)
공식적으로 셀린느는 LVMH의 일원이 됩니다. 셀린느 비피아나는 크리에이터 디렉터로 남았으며 기성복 및 액세서리 컬렉션을 가속화하기 위한 작업이 시작됩니다.셀린느 비피아나의 사망(1997년)
창립자 셀린느 비피아나는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마이클 코어스(Michael Kors)(1997년~2003년)
미국의 디자이너인 마이클 코어스(Michael Kors)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됩니다. 미국의 실용성에 파리지앵의 감성을 결합한 마이클 코어스는 현대적인 여성복의 매력을 대담하게 연출하였고 1998년 3월 셀린느의 첫 데뷔쇼를 선보인 이후 부기(Boogie) 백을 비롯하여 여러 액세서리 아이템들을 히트시킵니다. 그러나 그는 6년 후 자신의 브랜드에 집중하기 위해 2003년 셀린느를 떠납니다.셀린느 부기백
2000년 셀린느 광고캠페인(지젤 번천)
로베르토 메니체티(Roberto Menichetti) (2004년)
전 버버리의 디자이너였던 로베르토 메니체티가 마이클 코어스의 후임으로 임명되었지만 1년 후 셀린느를 떠납니다.이바나 오마직(Ivana Omazic)(2006년~2008년)
프라다(Prada), 질샌더(Jil Sander), 미우미우(miu miu) 등에서 활약을 보였던 이바나 오마직(Ivana Omazic)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됩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큰 성과를 내지 못합니다.피비 파일로(Phoebe Philo)(2008년~2018년)
2008년 피비 파일로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됩니다.피비 파일로는 끌로에(Chloé)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며 전년대비 4-5배의 매출을 올리는 등 매우 큰 성과를 거두었던 디자이너로 출산과 가족들과의 시간을 위해 휴식을 취하던 중 셀린느의 러브콜을 받게 되고 피비 파일로의 영입으로 인해 셀린느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됩니다.
2008년까지 침체되어 있던 셀린느는 피비 파일로에 의해 우아하고 미니멀하게 재해석되었고 깔끔하고 강한 라인은 브랜드의 운명을 바꾸어 놓습니다. 러기지(luggage) 백 , 트라페제(trapeze) 백, 트리오(Trio) 백, 카바스(cabas) 백, 트로터(trotteur) 백 등의 인기 아이템들을 연달아 내놓았고 출시되는 아이템마다 완판을 기록하면서 브랜드 가치는 수직상승합니다.
2008년까지 침체되어 있던 셀린느는 피비 파일로에 의해 우아하고 미니멀하게 재해석되었고 깔끔하고 강한 라인은 브랜드의 운명을 바꾸어 놓습니다. 러기지(luggage) 백 , 트라페제(trapeze) 백, 트리오(Trio) 백, 카바스(cabas) 백, 트로터(trotteur) 백 등의 인기 아이템들을 연달아 내놓았고 출시되는 아이템마다 완판을 기록하면서 브랜드 가치는 수직상승합니다.
피비파일로의 셀린느 러기지백(좌)과 트라페제백(우)
피비 파일로의 2010 SS 컬렉션
에디 슬리먼(Hedi Slimane) (2018년~
피비 파일로가 10년을 끝으로 2018년 셀린느를 떠나고 디올 옴므와 생 로랑에서 활동하였던 에디 슬리먼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됩니다.피비 파일로에 열광하던 수많은 팬들은 에디 슬리먼의 옷을 받아들이지 못하였는데 직장인 여성들을 타깃으로 한 실용적이고 스타일리시하던 옷이 에디 슬리먼의 특징인 깡마른 보헤미안 스타일로 바뀌게 되었는데 여기서 몸매에 구애받지 않고 입을 수 있었던 기존의 셀린느 옷과는 달리 깡마른 모델들만 기용하면서 많은 셀린느 팬들의 비판을 받게 됩니다.
피비 파일로의 셀린느와 에디 슬리먼의 셀린느는 너무 달라 셀린느의 스타일은 올드 셀린느(Céline)와 뉴 셀린느(Celine)로 나눠지게 되었는데 2008년부터 2018년까지 피비 파일로가 있었을 때의 셀린느를 올드 셀린느(old Céline), 에디 슬리먼이 이끄는 2018년부터의 셀린느를 뉴 셀린느(new Celine)라 구분합니다.
올드 셀린느의 카바스백(좌)과 뉴 셀린느의 카바스백(우)
에디 슬리먼은 뉴 셀린느의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였고 첫 남성복 라인을 런칭합니다. 이는 여성복만 해오던 명품 브랜드 역사상 처음 있었던 일일 뿐만 아니라 생로랑에서 했던 똑같은 옷을 셀린느의 런웨이에 올리면서 하우스가 먼저인가 브랜드가 먼저인가 하는 논란이 거세게 일기도 했습니다.
많은 기존의 셀린 팬들이 피비 파일로 느낌의 다른 디자이너를 찾아 떠났고 올드 셀린 계정이 생기는 등 올드 셀린에 대한 값어치가 배 이상 상승하기도 했습니다.
피비 파일로의 셀린느 로고(좌) / 에디슬리먼의 셀린느 로고(우)
그러나 에디 슬리먼은 이전 브랜드에서 했던 것처럼 로고 E 위의 '를 빼고 글자간의 간격을 좁히는 등 기존 로고를 바꿨고 인스타그램 계정의 사진들을 모두 삭제하면서 새로운 브랜딩을 시작하였습니다.
셀린 남성 라인의 경우 초반에는 좋은 평을 듣지는 못하였으나 이후 점차 주목을 받기 시작하여 남성복 시장에서 셀린느를 각인시키는 데 성공하였고 현재는 MZ세대들 사이에서 매우 핫한 명품 브랜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에디 슬리먼의 셀린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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