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디(Fendi)의 역사 - FENDI Timeline
펜디(Fendi)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가죽과 모피를 취급하는 작은 가게로 시작하였으며 1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여전히 패션의 혁신과 품질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칼 라거펠트의 또 다른 수혜 브랜드 중 하나인 펜디의 설립 초기부터 현재까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펜디의 'FF' 로고가 처음 선보였으며, 이는 ‘Fun Fur’의 약어로 칼 라거펠트의 혁신적인 모피 디자인을 상징합니다. 이 로고는 오랫동안 펜디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또한 1969년에 최초의 상업용 모피 라인이 출시되었습니다.
칼 라거펠트의 또 다른 수혜 브랜드 중 하나인 펜디의 설립 초기부터 현재까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펜디(Fendi)
작은 가게의 오픈(1918년)
아델레 카사그랑데(Adele Casagrande)는 비아 델 플레비시토(Via del Plebiscito)에 가죽과 모피를 취급하는 작은 가게를 엽니다. 이 가게의 이름은 당시 '카사그랑데(Casagrande)'였습니다.가게 명칭 변경 (1925년)
아델레 카사그랑데는 에두아르도 펜디(Edoardo Fendi)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남편의 성을 따서 가게 이름은 '펜디(Fendi)'로 변경합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이탈리아에는 신흥 중산층이 크게 늘어나면서 정성껏 만들어진 고급 제품을 원하게 되었는데 이들 부부는 시대의 트렌드에 맞게 사업을 잘 운영하여 이탈리아 상류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게 됩니다.1920년대 초기의 펜디 매장
에두아르도 펜디(Edoardo Fendi)의 사망 (1946년)
에두아르도 펜디(Edoardo Fendi)가 세상을 떠납니다. 사업은 부인인 아델레(Adele)와 다섯 딸인 파올라(Paola), 안나(Anna), 프랑카(Franca), 카를라(Carla), 알다(Alda)에게 사업을 물려줍니다.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의 합류 (1965년)
펜디의 다섯 딸에 의해 운영되고 있던 펜디는 독일 출신의 디자이너 칼 라거펠드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합니다. 샤넬의 디자이너로 더 유명해진 칼 라거펠트는 샤넬 이전 오랫동안 펜디에 몸담아 왔습니다. 그는 펜디의 고급 모피 라인 디자인을 맡았으며 '모피의 장인'으로 명성을 얻게 됩니다. 전통적인 모피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그는 모피를 가벼우면서도 실용적인 스타일로 변형시킵니다. 그의 첫 컬렉션은 큰 호응을 얻었으며 새롭고 다양한 재단법을 사용하고 다양한 색상의 모피를 선보여 모피 하면 펜디를 떠올릴 정도로 펜디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그는 사망 직전인 2019년까지 펜디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54년을 활동하였으며 펜디의 성장에 큰 공을 세웠습니다.칼 라거펠트와 펜디의 다섯자매
FF로고 탄생 (1969년)
펜디 FF 로고
펜디의 'FF' 로고가 처음 선보였으며, 이는 ‘Fun Fur’의 약어로 칼 라거펠트의 혁신적인 모피 디자인을 상징합니다. 이 로고는 오랫동안 펜디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또한 1969년에 최초의 상업용 모피 라인이 출시되었습니다.
화장품, 남성 액세서리 출시 (1970년)
1970년에 화장품과 남성 액세서리가 출시되었습니다.기성복 컬렉션 출시 (1977년)
기성복 컬렉션을 최초로 선보입니다.사업의 확장 (1980년대)
향수와 안경, 청바지, 가정용 가구 등으로 사업의 범위를 확장합니다.이때는 3세대 펜디 여성들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마리아 테레사(Maria Teresa), 페데리카(Federica), 마리아 일라리아(Maria Ilaria) 등이 펜디에서 일하게 되면서 펜디는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게 됩니다. 이 시기는 펜디가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던 시기로 모두에게 기억되고 있으며 펜디의 판도가 바뀐 시기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창립 60주년 (1985년)
뉴욕 5번가에 창립 60주년을 기념하여 첫 미국 매장을 오픈합니다.실비아 벤투리니 펜디(Silvia Venturini Fendi)의 합류 (1992년)
펜디 가문의 3세대를 대표하는 가장 저명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는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Silvia Venturini Fendi)가 칼 라거펠트의 2인자로 하우스에 합류합니다. 1994년에 실비아는 액세서리 및 남성복 디자인 책임자로 승진합니다.1992년 펜디 광고캠페인(나오미 캠벨)
바게트 백 출시 (1997년)
펜디 바게트(Fendi Baguette) 백이 출시됩니다.펜디 바게트백 1997 리에디션
펜디 바게트 백은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Silvia Venturini Fendi)의 최고 히트작 중 하나로 팔에 바게트 빵을 끼우고 다니는 여성들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백으로 1990년대에 유행했던 미니멀리즘의 공식을 깨고 화려한 디자인으로 눈길을 끌었습니다. 당시 셀러브리티들이 가장 좋아하는 가방이었으며 여전히 브랜드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로 출시된 이후 소재와 컬러, 디테일을 변형하여 천 개가 넘는 버전으로 제작되었습니다.
LVMH의 지분 인수 (1999년)
LVMH와 프라다(Prada)가 공동으로 펜디 지분 51%를 인수합니다. 브랜드의 경영은 여전히 3대째 이어지고 있는 펜디 가문이 맡고 있습니다. 이후 2001년 LVMH가 추가로 지분을 인수합니다.만리장성 패션쇼 (2007년)
중국의 만리장성에서 우주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패션쇼를 개최합니다.펜디의 만리장성 패션쇼
피카부(Peekaboo) 백 출시 (2009년)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Silvia Venturini Fendi)가 2009년 선보인 피카부백은 바게트 백에 버금가는 성공을 거둡니다.칼 라거펠트와의 50주년 기념 패션쇼 (2015년)
칼 라거펠트와 함께 한 50주년을 기념하여 파리 샹젤리제 극장(Théâtre des Champs-Élysées)에서 모피 전용 최초의 오뜨 꾸뛰르 패션쇼인 오뜨 푸루르(Haute Fourrure)를 개최하여 논란을 일으킵니다.칼 라거펠트와 펜디의 협업 50주년을 기념해 열린 패션쇼는 ‘나에게 모피는 펜디, 펜디는 모피이며 모피는 유쾌하다’라는 슬로건 아래 모피 분야에서 오랫동안 고수해 온 최상급의 창조 정신과 장인 정신을 표현하였습니다.
앞서 펜디는 2011년에 서울에서 모피 패션쇼를 열어 동물 애호가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앞서 펜디는 2011년에 서울에서 모피 패션쇼를 열어 동물 애호가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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