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올(Dior)의 역사 : Dior Timeline

디올의 창립자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은 코코 샤넬과 함께 대중들에게 가장 유명한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중 한 명이며 디올은 LVMH에서 루이 비통에 이어 2위의 매출을 기록 중인 브랜드입니다. '나는 꽃 같은 여성을 디자인했다'라는 크리스찬 디올의 말처럼 '뉴 룩(New Look)'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탄생시키고 여성미가 넘치는 디자인으로 전 세계 여성들의 찬사를 받았으며 현재까지도 전 세계인이 열광하는 브랜드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습니다.
디올의 탄생과 현재까지의 발자취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디올(Dior)

크리스찬-디올-christian-dior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의 창립 (1946년)

세계적으로 가장 탐나는 브랜드 중 하나인 디올(Doir)의 창립자인 크리스티앙 디올(Christian Dior)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1929년 금융위기로 집안이 재정적 파탄을 맞으면서 무일푼이 됩니다.
1935년부터 디올은 돈을 벌기 위해 드레스와 모자 등의 크로키를 하기 시작하였고 1938년 R. 피게의 양장점의 디자이너가 되었지만 2차 세계대전에 종군하게 되어 잠시 디자인을 멀리하지만 결국 다시 피게의 양장점에 돌아오게 됩니다.
그 후 수많은 패션 하우스를 돌아다니며 기술을 연마한 디올은 필립 에 가스통(Philipe et Gaston) 패션 하우스의 아티스틱 디렉터가 되어달라는 제안을 거절한 후 몽테뉴 30번가에 자신의 본사를 내기로 결정하고 40세의 나이에 독립하게 됩니다. 이때 피에르 가르뎅(Pierre Cardin)이 크리스찬 디올의 디자이너로 함께 합니다.

첫 번째 컬렉션, 크리스챤 디올 퍼퓸(Christian Dior Parfums) 설립 (1947년)

1947년 2월 12일, 몽테뉴 30번가의 본사에서 1947년 봄-여름 시즌을 위한 첫 번째 패션 컬렉션을 런칭합니다. 그의 컬렉션을 보고 하퍼스 바자 카멜 스노우(Harper's Bazaar)의 편집장 카멜 스노우(Carmel Snow)는 "정말 새로운 룩이다"라고 외쳤는데 그래서 디올의 컬렉션은 "뉴 룩(New Look)"으로 현재까지도 패션 역사에 남아 있습니다.
또한 1947년에는 크리스챤 디올 퍼퓸(Christian Dior Parfums)이 설립되었는데 최초의 향수인 미스 디올(Miss Dior)을 출시하며 향수 업계에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미국 투어 (1950년)

디올은 미국 투어를 하며 자신의 디자인을 선보입니다.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 감독의 영화 무대 공포증(Stage Fright)의 마를렌 디트리히(Marlene Dietrich)의 의상을 디자인하게 되면서 미국에서의 그의 인기는 더욱 높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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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무대 공포증의 마를렌 디트리히

1950년에는 피에르 가르뎅(Pierre Cardin)이 디올을 떠나 자신의 패션 하우스를 설립합니다.

도서 출간 (1951년)

Je Suis Couturier(나는 쿠튀르에다) 라는 제목의 첫 번째 책을 출간합니다.
또한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와 협업하여 샤를 드 베이스테기(Charles de Beistegui)의 세기의 무도회(Ball of the Century) 의상을 제작합니다.

슈즈 라인 런칭 (1953년)

로저 비비에(Roger Vivier)와 파트너십을 맺고 맞춤 제작 슈즈 라인을 선보입니다.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 합류 (1955년)

크리스찬 디올의 첫 번째 어시스턴트로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 이 고용됩니다. 또한 디올 최초의 립스틱이 출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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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의 디올 광고

크리스챤 디올(Christian Dior)의 사망 (1957년)

디올이 1957년의 가을 컬렉션을 마지막으로 이탈리아의 휴양지에서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 (1957년~1960년)

크리스찬 디올이 없는 크리스찬 디올 하우스는 혼란에 빠졌고 곧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을 수석 디자이너로 승진 시킵니다. 이브 생 로랑은 1955년 크리스찬 디올이 처음으로 직접 발탁한 사람으로 1958년 첫 번째 컬렉션으로 인해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그가 디자인한 옷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고 이에 용기를 얻은 그는 더욱 대담한 디자인을 보여주지만 카페와 재즈 클럽의 실존주의자들로부터 영감을 받은 비트 룩(Beat Look)은 1960년 혹평을 받게 됩니다.
결국 이브 생 로랑은 디올 하우스를 떠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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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생 로랑의 비트룩

마크 보한(Marc Bohan) (1960년~1989년)

이브 생 로랑이 떠난 자리에 마크 보한이 임명됩니다. 그의 디자인은 많은 사람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1961년 디올의 컬렉션에서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Elizabeth Taylor)는 12벌의 디올 드레스를 주문하기도 했습니다.

런던 부티크 오픈 (1961년)

첫 번째 디올 부티크가 런던에 문을 엽니다.
또한 엘리자베스 테일러(Elizabeth Taylor)는 크리스찬 디올의 Soiree a Rio 드레스를 입고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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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올 드레스를 입은 엘리자베스 테일러

기성복 컬렉션 미스 디올 (Miss Dior) 런칭 (1967년)

프랑스 최초의 기성복 컬렉션인 "미스 디올(Miss Dior)"이 런칭됩니다.

베이비 디올(Baby Dior) 오픈 (1967년)

크리스찬 디올이 그랑빌(Granville)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추억과 친한 친구들의 아이들을 위해 디자인한 의상에서 영감을 받아 몽테뉴 28번가에 아동복 부티크를 런칭합니다.

디올 코스메틱(Dior Cosmetics) 탄생 (1968년)

디올 코스메틱의 탄생으로 디올 최초의 종합 뷰티 라인을 선보입니다.
1968년 말, 크리스챤 디올 퍼퓸(Parfums Christian Dior)이 모엣 헤네시(Moët Hennessy)에 매각됩니다.

크리스챤 디올 옴므(Christian Dior Homme) (1970년)

디올의 첫 번째 기성복 남성복 라인인 크리스챤 디올 옴므(Christian Dior Homme)를 런칭합니다.

Willot Group에 매각 (1978년)

1947년 디올을 설립할 때 자금을 지원해 주었던 마르셀 브루삭 그룹(Marcel Broussac Group)이 파산 신청을 하고 Dior 상표 및 자산은 Willot Group에 매각됩니다.

40주년 기념 전시회 개최 (1987년)

파리의 Museé des Arts Decoratifs에서 브랜드의 4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를 개최합니다.

지안프랑코 페레(Gianfranco Ferré) (1989년~1996년)

오랜 시간 디올을 책임졌던 마크 보한이 노먼 하트넬(Norman Hartnell)로 자리를 옮깁니다. 여성 컬렉션의 수석 디자이너로 지안프랑코 페레(Gianfranco Ferré)가 임명됩니다.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에서 인수 (1984년)

윌롯 그룹(Willot Group)이 1982년 파산 신청을 하게 되면서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가 디올을 인수합니다. 아르노는 이듬해 크리스챤 디올 컴퍼니(Christian Dior Company)의 사장으로 취임합니다.

디올백 탄생 (1995년)

디올은 당시의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자크 시라크의 영부인 베르나데트 시라크의 요청으로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1995년 프랑스에 방문했을 때 'Chouchou'라는 이름의 백을 전달합니다. 영부인은 이를 다이애나에게 선물했고 이후 다이애나가 해당 가방을 들고 다니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노출되면서 많은 주목을 받게 됩니다. 이 가방은 Lady Dior이라는 이름으로 정식 발매 되었고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되며 현재까지도 전 세계 여성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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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올백을 든 다이애나 / 레이디 디올 백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 (1996년~2011년)

지안프랑코 페레의 후임으로 존 갈리아노가 수석 디자이너로 임명됩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 Museum)에서 디올 5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가 열립니다.

크리스찬 디올 박물관의 탄생 (1997년)

한때 디올 가문이 소유했던 그랑빌 저택이 크리스찬 디올 박물관으로 탈바꿈합니다. 애비뉴 몽테뉴의 부티크 역시 새로운 인테리어로 다시 문을 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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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그랑빌 저택 / 현) 디올 박물관

주얼리 디렉터 임명 (1998년)

빅투아르 드 카스텔란(Victoire de Castellane)이 디올 파인 주얼리의 첫 번째 아티스틱 디렉터로 임명됩니다.

새들백의 탄생 (2000년)

1999년 디자인된 새들백이 2000년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말의 안장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된 새들백은 한동안 선풍적인 인기를 끌다가 점차 사라졌으나 이후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에 의해 다시 리뉴얼되어 출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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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의 새들백과 2018년의 새들 백

에디 슬리먼(Hedi Slimane) (2000년~2007년)

디올 옴므의 수석 디자이너로 애디 슬리먼(Hedi Slimane)이 임명됩니다.
애디 슬리먼은 남성들에게 스키니진을 입혀 고정관념을 깨뜨렸고 이는 많은 남성들을 열광하게 만들며 이러한 애디 슬리먼의 디올 옴므의 영향으로 현재까지도 많은 남성들이 스키니진을 즐겨 입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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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 슬리먼의 디올 옴므

크리스 반 아쉐(Kris van Assche) (2007년)

에디 슬리먼의 후임으로 크리스 반 아쉐가 임명됩니다. 또한 디올 창립 60주년을 기념하여 베르사유 궁전(Palace of Versailles)에서 회고전 패션쇼가 열립니다.

라프 시몬스(Raf Simons) (2012년~2015년)

2011년 존 갈리아노가 디올을 떠나고 이듬해인 2012년 라프 시몬스가 존 갈리아노의 후임으로 디올의 수석 디자이너로 오게 됩니다.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Maria Grazia Chiuri) (2016~)

라프 시몬스가 2015년 사임하고 이듬 해인 2016년 마리아 그라치아 차우리가 발렌티노에서 디올로 자리를 옮깁니다.

LVMH (2017년)

아르노 가문이 디올의 주식을 사들여 디올은 LVMH 소속이 됩니다.

킴 존스(Kim Jones) (2018년~

그리스 반 아쉐의 후임으로 루이비통의 킴 존스가 디올 옴므의 수석 디자이너가 됩니다.

킴 존스의 디올 옴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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