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시아가(Balenciaga)의 역사 - Balenciaga Timeline

'꾸뛰르의 제왕'으로 불리는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Cristobal Balenciaga)의 이름을 딴 발렌시아가는 오늘날까지 혁신이라는 단어가 가장 장 어울리는 대표 브랜드입니다.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시대부터 뎀나 바살리아의 시대까지 발렌시아가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발렌시아가(Balenciaga)

발렌시아가

아뜰리에 오픈 (1917년)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Cristobal Balenciaga)가 스페인의 산세바스티앙에 첫 번째 오뜨 꾸뛰르 아틀리에를 오픈합니다.

파리에 부티크 오픈 (1937년)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발렌시아가는 매장을 패션의 중심지 파리로 이전합니다.
10 Avenue George V에 부티크를 오픈한 발렌시아가의 첫 번째 컬렉션은 같은 해 언론과 구매자에게 공개되었고 수많은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습니다.

르 딕스(Le Dix) 출시 (1947년)

최초의 발렌시아가 향수 르 딕스(Le Dix)가 출시됩니다.

발렌시아가의-르딕스-향수캠페인
발렌시아가의 르 딕스(Le DIx) 향수 캠페인

혁신적인 디자인의 시작 (1951년)

발렌시아가의 혁신이 시작됩니다.
당시 발렌시아가 아뜰리에에는 오스카 드 라 렌타(Oscar de la Renta), 피에르 가르뎅(Pierre Cardin), 엠마누엘 웅가로(Emanuel Ungaro)가 일하고 있었는데 재키 케네디(Jackie Kennedy), 폴린 드 로스차일드(Pauline de Rothschild), 글로리아 기네스(Gloria Guinness), 모나 폰 비스마르크(Mona von Bismarck) 등 유명 인사들이 그의 아뜰리에 고객이었습니다.

발레시아가의-바루즈(Vareuse)와-코쿤(Cocoon) 라인.
발레시아가의 바루즈(Vareuse)와 코쿤(Cocoon) 라인

허리가 강조된 코르셋 실루엣이 대부분이었던 당시 발렌시아가(Balenciaga)는 바루즈(Vareuse)와 코쿤(Cocoon) 라인으로 실루엣을 실험하고 혁신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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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잡지 표지에 실린 발렌시아가룩

박시 슈트, 낙하산 드레스의 탄생 (1952년)

발렌시아가의 두 가지 시그니처인 박시 슈트와 낙하산(Parachute) 드레스를 처음으로 선보입니다.

sack 드레스 출시 (1957년)

당시 유행하던 디올의 뉴 룩(New Look)과 완전히 상반되는 실루엣인 'sack' 드레스를 선보이며 파장을 일으킵니다. 다음 해에는 베이비 돌 드레스가 출시됩니다.

발렌시아가의-sack-드레스와-베이비돌-드레스
발렌시아가의 sack 드레스와 베이비 돌 드레스


문을 닫은 하우스 (1968년)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는 마지막 컬렉션을 보여준 후 진정한 꾸뛰르를 디자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 패션 하우스의 문을 닫고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합니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스페인으로 떠납니다.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Cristobal Balenciaga)의 사망 (1972년)

발렌시아가의 창시자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가 1972년 3월 24일 자택에서 사망합니다.

재런칭 (1986년), 미셸 고마(Michel Goma) (1986년 ~ 1992년)

보가트 그룹(Bogart Group)에 발렌시아가 하우스가 인수되었고 재런칭합니다. 여성복 디자이너로 미셸 고마(Michel Goma)가 임명되었습니다. 그의 옷은 1980년대의 트렌드에 맞춘 현대적 디자인이었으며 상업적으로도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지만 발렌시아가의 특징인 혁신에서는 벗어나 있었고 기존의 발렌시아가의 전통과는 차이가 있었기에 비판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요세푸스 티미스터 (Josephus Thimister) (1992년 ~ 1997년)

고마의 후임으로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요세푸스 티미스터는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려고 노력하였고 미니멀리즘을 강조한 컬렉션을 선보였으나 성공을 거두지 못합니다.

니콜라 제스키에르(Nicolas Ghesquière) (1997년 ~ 2012년)

루이 비통의 디자이너로 국내에서도 많이 알려진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요세푸스 티미스터의 후임으로 임명됩니다.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1995년 발렌시아가에 합류했는데 당시의 나이는 25세였고 그로부터 2년 뒤인 27살이라는 매우 젊은 나이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됩니다.
당시에는 새 디자이너를 구하는 동안 그에게 임시로 직책을 맡겼지만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매우 좋은 성과를 보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직책을 계속 맡게 되었고 이후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발렌시아가에 몸 담습니다.
당시 발렌시아가는 이전의 명성을 잃고 있었으나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이러한 발렌시아가를 다시 일으켰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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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 제스키에르의 발렌시아가(2004 F/W)

모터(motor) 백의 탄생 (2001년)

하우스 최초의 잇백인 라리아트(Lariat) 백이 출시됩니다. 처음 이 백은 그 시즌의 쇼에 서는 모델들에게 선물로 주었던 백이었으나 많은 스타들에게 인기를 끌게 되었고 이후 모터백, 모터사이틀 백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백이 되었습니다.
발렌시아가모터백
발렌시아가 모터백

또한 2001년 현재는 Kering이 된 PPR의 일부인 Gucci Group에 비공개 금액으로 매각됩니다.


남성복, 액세서리 런칭 (2002년)

처음으로 남성 기성복과 액세서리가 소개됩니다.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 뮤지엄(Cristobal Balenciaga Museum) 오픈 (2011년)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출생지인 스페인 제타리아(Getaria)에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 뮤지엄이 문을 엽니다.

크리스토발-발렌시아가-뮤지엄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 뮤지엄

알렉산더 왕(Alexander Wang) (2012년 ~ 2015년)

대만계 미국인이며 국내에서도 알렉산더 왕이라는 브랜드로 이미 인지도가 있는 알렉산더 왕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됩니다.
첫 컬렉션은 나름 호평을 받았으며 그는 발렌시아가의 아이코닉한 디자인에 스포티한 아메리칸 룩을 불어넣었는데 발렌시아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이 많았으며 경력이 얼마 되지 않은 젊은 디자이너였던 그가 혜성같이 나타난 스타 디자이너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상업성이 뛰어난 뉴욕 레이블 디자이너였기에 오뜨꾸뛰르를 발판으로 시작되었던 발렌시아가와 맞지 않았다는 평이 우세합니다.
2016년 SS 컬렉션을 마지막으로 그는 2015년 발렌시아가를 떠나게 됩니다.

뎀나 바살리아(Demna Gvasalia) (2015년 ~

베트멍(Vetements)의 디자이너이자 마틴 마르지엘라와 루이비통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뎀나 바살리아(Demna Gvasalia)가 알렉산더 왕의 후임으로 임명되어 2016 F/W 컬렉션으로 데뷔합니다.
그는 발렌시아가의 전통에 베트멍의 힙함과 스포티를 잘 불어 넣었다고 평가받고 있으며 한동안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던 발렌시아가를 완전히 탈바꿈시켜 놓습니다.

스피드 러너(Speed runner), 트리플 S(triple S) 출시 (2017년)

발렌시아가-스피드러너-트리플S
발렌시아가 스피드 러너(좌) / 트리플 S(우)

양말을 신은 듯한 느낌의 운동화 스피드 러너가 2017년 S/S 시즌에 출시되어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그 해 F/W 시즌 트리플 S가 출시되면서 열풍을 일으킵니다.

로고 변경 (2018년)

기존의 로고를 현재의 두꺼운 버전으로 바꿉니다.

발렌시아가로고의변경
발렌시아가 로고 변천사

오뜨 꾸뛰르 복귀 선언 (2020년)

오뜨 꾸뛰르 복귀를 선언합니다. 이는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Cristobal Balenciaga)가 브랜드를 폐쇄한 이후 처음입니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2021년으로 계획을 연기합니다.

오뜨 꾸뛰르 쇼 개최 (2021년)

53년 만에 첫 오뜨 꾸뛰르 쇼를 개최합니다. 발렌시아가의 전설적인 테일러링 방식과 바살리아의 패션에 대한 현대적인 접근 방식, 그리고 스트리트 룩의 미학을 결합해 호평을 받았습니다.

발렌시아가-2022-SS-오뜨꾸뛰르
발렌시아가 2022 SS 오뜨꾸뛰르

발렌시아가 2024 Sp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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